'온순' 은 천로역정의 아주 초반부에 등장한다.

크리스찬을 따라가서 초기 여행에 동행을 하지만, 절망의 늪에 빠진 이후 바로 순례의 길을 중단하고 멸망의 성으로 복귀하게 된다.

중요하게 관찰할 점은 '온순'에게는 크리스찬과 같은 죄의 짐이 없었다는 것이다.

즉 그는 죄의 자각조차 하지 못하고 순례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죄의 자각이 없는 자에게 있어서 순례의 길에서 겪게 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길을 계속 갈 이유는 없었다.

'온순'은 현 시대의 수많은 '유사 그리스도인'을 대변한다.

예수님을 친구로 삼고 그 사랑이 좋아서, 그 축복을 바라며 그들은 그리스도인처럼 사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려움이 닥치면, 그들은 발길을 되돌린다.

그들에게는 죄의 짐이 가져다 주는 절망적인 심판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이키는 것이다.

김남준 목사님은 '죄의 짐이 가져다주는 비참함과 절망을 조금이라도 느끼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거듭났는지를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대는 혹 '유사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그대는 죄의 짐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 우리 모두가 자신에게 던져봐야할 질문일 것이다.


과거에 느끼지 못했던 천로역정의 엄청남을 느끼게 된다.

작은 사건 하나 하나에 담긴 함축적 의미는 어마어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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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으로서 정치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생각해보아야 할 주제다.

분명한 것은 권위는 하나님께로 부터 오지만,
우리 나라는 과거 군주국가가 아닌,
민주국가라는 것이다.

즉 국민에게 주어진 권위와 의무와 책임은,
올바른 성경적 가치관에 따라 행사되어져야하며 책임을 져야한다.

물론 난 현 상황에서 해결책은 참된 말씀 선포라고 생각한다.

과거 영국이 유래없는 타락을 했을 때,
조지 휫필드, 존 웨슬리 등의 설교자들의 말씀 선포를 통해서
급격한 회개로 '1차 대각성'이 일어나 영국은 개혁되었다.

각 사람들이 회개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바르게 생활하면,
나라도 개혁되게 되어있다. 결국 다 연관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윌리엄 윌버포스가 그 가장 좋은 예이다.

그는 조지 휫필드에게 영향을 받아 회개한 존 뉴턴을 통해 영향을 받았고,
영국의 노예 해방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물론 그것은 어떤 사람이 이뤄낸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였다.

보아라, 참된 복음의 선포가 어떻게 각 사람을 회개하게 하고,
어떻게 각 사람의 양심을 깨우고 의롭게 살도록 하며,
어떻게 잠들어있는 타락한 교회를 깨워 일으켰으며,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나라를 변화시켰는지!

지금 상황과 묘하게 겹치지 않는가...
현 시국이 단지 국가의 문제라고 생각되어지지는 않는다.
조국 교회는 개혁되어야하며, 깨어나야 한다...

주여, 그 거룩함을 나타내소서.

앞서 가시고, 잠자는 자들을 깨어 비취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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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1st Penguin.

사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 생긴 공부하기 참 좋은 카페.

초코 머핀 맛이 대박이었던...ㅋ





테이블 옆의 가방 놓는 박스나,

아예 책보라고 있는 스탠드와,

노트북 꼽기 좋게 여기저기 있는 코드들과 무선랜...

센스 좋다...

인테리어도 맘에 들고...





건설적인 '프로젝트' 이벤트도 있고,

완전 맘에 들어버렸다.

마음이 울적할 때 조용히 가서 책 읽기 참 좋은 곳인듯...^^

여기 접수...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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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관에 new 멤버가 곧 입주한다고 해서,
아무래도 옷장을 비워야할 것 같아서 정리 좀 했다.

다친 손에 밴드 붙이고 으쌰...

덕분에 그 동안 쌓아놓은 책들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거, 많이도 샀구나!

단연 돋보이게 눈에 많이 띄는 4명의 저자는,

조나단 에드워즈 - .
마틴 로이드 존스 - .
존 파이퍼 - .
그리고 김남준 목사님 - .

이거 완전 개혁주의 계보로군...ㅋ 어거스틴과 칼빈의 책은 아직 별로 없어서...;

다들 목사님들이신데, 김남준 목사님에게만 목사님을 붙이는 이유는....
외국 사람들은 이름만 불러도 편한데 우리나라는 문화상 예의가 없어지는 거니까...ㅋ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저자들 중 2분이나 아직 살아계시니...

흠... 책보고 싶다.

요즘 너무 바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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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미제라블에서 내가 생각하는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

 굉장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장면.

 
 My soul belongs to God, I know  I made that bargain long ago
오래전에 맹세했듯이 내 영혼은 하나님의 것

He gave me hope when hope was gone, He gave me strength to journey on
희망이 사라졌을 때 나에게 희망을 주셨고, 살아갈 힘을 주셨지


 그렇다 - .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유혹 가운데 거룩과 의로움을 선택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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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그렇습니다.

제가 의지할 것은 당신의 충만하심 뿐입니다.

무한한 선과 무한한 의로움과
무한한 자비와 무한한 긍휼과
무한한 지혜와 무한한 능력과
무한한 사랑과 무한한 은혜와

그리고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려는,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무한한 열심.

그것이 나의 유일한 소망이자 희망이오니,

주여 나타내소서. 당신의 영광을 -.
영광을 나타내소서.
당신의 얼굴빛을 비추시고 떨쳐 일어나 앞서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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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훈련...

추웠고, 나중에 비를 쫄딱 맞아서 지금도 몸이 으슬으슬거리지만..

중간에 로마서 8장을 묵상하는데 도중에 깨달은 것 하나...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 "

  존 스토트의 말대로 롬 7장과 8장의 큰 차이는 성령의 역사하심이며, 성령을 좇는 삶이야말로 죄를 이기는 원동력일 것이다.

 그리고 그 성령을 좇는 삶이라는 것은 영적인 것을 묵상하는 것이다. 나의 생각이 말씀에 지배되어 진리의 성령님이 내 마음을 불꽃같이 태우시도록....

 묵상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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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는 말한다.

"내가 모든 것을 다 누려봤는데, 결국 헛된 것이더라"

대부분의 반응은 이런 것일거다.

"뭔 말인진 알겠는데, 그래도 난 누려보고 싶거든요?"

누가 이런 반응에서 자유롭다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생각해본다.

현실과 비현실.
실재와 비실재.

영원한 나라, 내세를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살라는 것은 언뜻 비실재로 느껴지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 그 때가 이르렀을 때 진정 현실과 비현실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2008년에 내가 먹은 사과는 실재하는 것인가?

그렇기에 어떤 면에서 진정 현실적인 삶을 사는 것은,
이 세상이 감추고 있는 진리 가운데 살아가는 삶이야 말로 진정 현실적인 삶일 것이다.

그것은 이상주의자의 꿈같은 몽상이 아닌,
진리의 길을 걷는 삶이다.

물론 그 길을 걷는 다는 것은,
현재의 삶,
즉, 실재 같은 비실재를 걸어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완전한 분리가 가능하진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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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공 공부...
  졸업 프로젝트...

하기 싫음에, 스트레스 무지 받고...^^;;

거기에 끼여 조금씩이나마 하려고 노력하는 영어공부...(사실 이게 주가 되야하는데도!!)

내 삶에 휴식을 주는 독서...
 말씀 묵상,
  기도...

그래,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살아가다보니까 잊은게 있다는 것...

아아, 맞아... 그랬지.

Soli Deo Gloria  & Pietas - .

구호처럼 외치고 공부하기 전에 쓰는 주제에,

진정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무엇을 가리키는지...

좀 더 생각해야 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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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목사님의 기도에 대한 설교를 듣는데,
누가복음에 나온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기도가 설교의 주제였다.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천사가 기도를 돕던 장면.

얼마전에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예수님도 천사의 도움을 받아 기도를 하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물며 예수님도 그러하실진대 나에게는 더더욱 주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되지 않는가 싶어서 더욱 더 전심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도우시길 간청했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언급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예수님의 기도를 천사가 도와야했던 이유는 예수님이 힘이 다하도록 기도하셔서, 즉 육체의 한계에 다다르도록 기도하셨기 때문에 천사가 도와 힘을 더하였다"는 것이었다.

충격이었다.

예수님의 그 간절한 기도, 단순히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만 그렇게 기도하셨던가? 그렇지 않다.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서 기도하시기를 즐기셨고, 하루종일 사역을 하시느라 고단한 몸을 쉬어야함에도 불구하고 밤에 홀로 기도하러 나가시던 모습, 새벽 오히려 미명에 홀로 기도하시던 모습...

나의 기도에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기 전에, 정말 전력을 다해 기도해봤던 적이 있던가....?

이것이 내 기도의 현주소다.

열렬한 기도를 바라지만 진액을 쏟도록 간절히 기도하며 주님을 붙들지 못하는 나의 모습...

조지 휫필드의 기도처럼 열렬히 기도해야할텐데...

내 몸의 쉼, 안위, 육신의 편안함을 선택한 나머지,
주님 앞에서의 열렬한 기도를 제껴버린 일이 얼마나 많은지...

나의 기도생활은 천사가 도울 자격조건에 미달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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